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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찬 바람을 닮은 책 2권


안녕하세요. 에디터L 입니다.

처음 글로 인사드리는 것 같은데, 제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기인 늦가을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서 기쁘네요!

저에게 가을이란 한 해를 잘 보냈는지 점검하는 시기인데요, 새해에 다짐한 일을 못 지킨적이 많아서(🙄) 가을에 한번 더 다짐하곤 해요.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다짐 중 하나인 책 많이 읽기 제대로 못 지켰고... 급한 마음에 열심히 사두었던 책을 읽고 있답니다.(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독서의 계절 가을에 읽으면 좋을 씁쓸한 사랑을 담은 소설 책 2권을 소개할게요. 읽다가 눈물 한 방울 또르르 흘릴 수 도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 1 ]

자본주의의 세상 옆에 들러리로 서 있는 우리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책 표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2009 | 위즈덤하우스 | 박민규



● 책의 정서?

때는 1년 전 가을, 낮에는 일, 저녁에는 우울하고 답답한 상태를 반복하면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태로 한동안 지낸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오랜만에 받은 친구의 카톡에 반가움은 잠시고 걱정과 불안을 막 쏟아내며 조언을 구했는데, 가만히 들어주던 친구가 이 책을 추천하며 "막막하고 무기력한 너에게 웃음과 따뜻함을 줄 거야" 라고 하더라고요. 그 길로 바로 서점에 가, 책을 구매 해 읽었는데요, 박민규 작가의 삶을 꿰뚫는 예리하고 위트있는 문장으로 그 여운이 길게 갔던 책이에요.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뽀빠이 과자 속 별사탕처럼 숨어있는 행복한 위로랄까요?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놓고는, 또 갑자기 숨쉬기운동 시~작 하는 느낌으로 풀어주는 능력을 요한은 갖고 있었다. 그보다는 말이야, 하고 요한이 말을 이었다. 인간은 왜 귀뚜라미에게 약한가! 그 쪽이 더 수수께끼라고 할 만하지. 난 정말 모르겠어. 도대체 왜들 그렇게 웃는 거지? 귀뚜라미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거잖아. 누군가는 말이야. 또 누군가는...라일락을 좋아할 수 있는 거고. - 켄터키 치킨 중 -

● 씁쓸한 뒷맛이 남는 사랑이야기


그럭저럭 평범한 외모의 남성인 '나' / 충격적일 정도로 못생긴 외모의 '그녀' / 인생 2회차 같은 '요한'

3명의 청년이 80년대 자본주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며 겪는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고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자본주의 세상의 변두리에서 각자의 어둠을 손에 꼭 쥐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외침으로 더 기억되는 책이에요. 특히 한국식 켄터키 치킨집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은 마치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후 친구들과 모여 누구 인생이 더 피곤한가를 농담과 함께 넋두리하며 피식거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찾은 단골들을 맞아, 켄터키 치킨의 주인도 희색이 완연한 얼굴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아저씨, 한 마리를 시켰는데 닭다리가 일곱 개 잖아. 이거 지네예요 사장님? 거품 한 점 없이 눌려 나오던 생맥주와, 에이 그건 다리가 아니라 내 성의지~ 요한의 어깨를 툭 치던 주인의 웃음이 생각난다. - 겨울, 나무에 걸린 오렌지 해 중 -

● '나'와 '그녀' 의 어둠은 누가 만든것일까?


'나'와 '그녀'는 외모에 관련된 마음의 어둠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생활력 없는 꽃미남 배우 아버지와 생활력은 강하지만 못생긴 외모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가 미모의 여사업가와 새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회구조의 문제, 부조리함 등의 어둠을 가지게 되고요.

못생긴 외모를 가진 추녀로 묘사되는 '그녀'는 잘못 한 것이 없는데도 잘못한 채 살아가게 된 말 없는 소녀가 됩니다. 특히 중후반쯤에 나오는 '그녀'의 장문의 편지에는 살아오며 겪은 각종 차별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걔들은 상처가 없으니까 행여 상처가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애들이란 말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어떤 상처가 있다 해도 살아갈 인간이라고 봐, 하지만 그 친구는 달라. 그런 상처를 가진 여자는 말이야...힘들어. 살아가는 일 자체가 힘든 거라구. 냉정하게 말하면 너가 신경쓴다해서 어떻게 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란 거야. - 루씨,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 중 -


● '요한' 의 어둠은 누가 만든것일까?


'요한'은 엉뚱한 말을 쉴 틈 없이 내뱉고, 가끔은 별거 아닌 거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마치 인생 2회차인 듯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정리하고 '나'와 '그녀'에게 현실적인 답을 툭툭 던져주는 정신적 지주인데요. 정작 본인의 어둠은 해결하지 못해 위태로워 보이는 인물이에요. 요한의 어둠은 사실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아요. 추측할 수 있는 정도죠. 알듯말듯한 모습이 더 현실에 있을법한 사람 같아서 마음속으로 응원 했던 인물이에요. 요한을 보면 <언니네 이발관의 홀로 있는 사람들>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던 요한의 손과 그 아래 손목의 희미한 흉터를 잊을 수 없다. 일자로 그어진 몇개의 선이.. 녹슨 기타 줄처럼 요한의 손목을 가로질러 있었다. ... 그것이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임을 안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가장 많이 추천되는 박민규 작가의 <카스테라> 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가 마음에 더 오래 남았어요. 독특한 문체와 함께 책 말미에 등장하는 Writer's cut 까지...! 다시 한번 대단하다 느낍니다.

스페셜에디션인 하드커버본 보다는 음원CD가 담겨있는 소프트커버본을 추천하지만, 저처럼 CD플레이어가 없는 분들을 위해 '위즈덤 하우스'에서 업로드한 음원 링크도 공유할게요.

 


[ 2 ]

세상에서 가장 격정적인 3인의 독백 '결혼의 변화'
결혼의 변화 책 표지

결혼의 변화 上 / 下 | 2005 | 솔 출판사 | 산도르 마라이



● 같은 사건이 인물에 따라 재구성 되는 이야기

이 책은 친구와 책 바꿔 읽기를 하다가 읽게 된 책이었어요. 제목을 봤을 때, 전혀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펼치지도 않고 있다가, 이왕 손에 왔으니 읽기나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첫 번째 주인공인 '일롱카'의 독백이 바로 시작되고, 엄청난 몰입감에 책을 덮을 수가 없었어요. 인물별로 1부, 2부, 3부로 나뉘어서 진행되는 독백의 방식은 같은 사건에 대해서 인물별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니 추리물을 읽는 것 같은 긴장감도 느껴지더라고요. 또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특유의 섬세한 묘사 덕분에 책을 읽었음에도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요?

그 사람 갔니? 그 사람 가면 좀 알려줘. 지금 계산하는 중이라고? 그 사람 지갑 말이야. 그거 어떻게 생겼니? 좀 자세히 봐봐. 나는 보고 싶지 않아. 갈색 악어가죽 지갑이라고? 정말? 그렇다면 다행이야. 왜 그러냐고? 그냥, 특별한 이유는 없어. 사실은 저 사람이 마흔 살 되던 해 생일에 내가 선물한 것이거든. - 1부 일롱카 열정적 사랑 중-

● 저마다 다른 사랑에 대한 태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일롱카' / 사회적인 입지에 걸맞은 사랑을 하려는 '페터'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초적인 사랑을 하는 '유디트' 이렇게 3명의 인물이 사랑에 얽힌 드라마를 보여주는 배경은 시민계급과 신분 등이 존재하던 1940년대 유럽이에요. 지금은 눈에 보이는신분제도는 없지만, 살아가며 각자 다른 의미로 계급을 느끼고는 하잖아요? 그래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공감된답니다.

첫 번째 아내는 완벽했고, 또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네. 다만 그녀에게는 스스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작은 결함이 하나 있었어. 무슨 정신적인 단점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말게. - 2부 페터 용기 없는 사랑 -

● 인물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독백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라면 인물의 관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져서 허를 찌른다는 점이에요. 이를테면 1부에서 '일롱카'가 는 독자를 카페에 앉혀놓고 자신의 결혼이 불행했던 이유 등을 장황하게 풀어내는데요. 함께 공감하고 실컷 안타까워하고 나면 2부에서 '페터'는 독자를 술집에 앉혀놓고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만 할 뿐, 자신에 대한 성찰이나, 신념을 풀어내기 바쁘죠. 그런 점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었을 때에는 각 인물의 성격에서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점을 발견하면서 여러번 읽을 수록 다채로운 책이라고 느껴졌어요.

나는 구질구질하게 오래 매달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다만 자기가 나한테 선사하는 행복을 실컷 맛볼 생각이야. 이 달콤한 꿀맛은 질리지가 않아. - 3부 유디트 파괴적 사랑 -


 

오늘 소개해드린 가을에 어울리는 씁쓸한 사랑을 담은 책 2권, 어떠셨나요?

스포를 피하기 위해 책의 극히 일부만 소개 해드렸으니 시간이 되신다면 가을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읽어보세요.(사실 언제 읽어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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